겨울 한라산 등반의 기억

확고한 꿈이 있는 인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꼭 해보고 싶은 몇 가지 바람들이 있었다. 겨울의 한라산 등반+백록담 정복은 몇 년 전부터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였다. 언젠가 다시 갈 그 날을 위해, 2018년 2월 24일의 한라산 등반 경험을 기억나는 대로 작성하였다. 사실 겨울에 한라산에 오르겠다고 유난히 별렀으면서 준비는 거의 못 했다. 2월이면 논문이 꽤 진행되어 신나게 여행을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당연히 그럴리가 없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젠을 신어 본 적도 없고 겨울산 등반 경험도 없으면서 게스트하우스 후기만 믿고 갔던, 조금 무모한 여행이었다. 





첫 한라산 등반 도전은 동생과 함께 했다. 동반자를 선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세 가지였다. 등산에 거부감이 없을 것, 겨울에 한가할 것, 그리고 체력이 좋을 것!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이 동생 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라산 등반 여행에 최적화된 '몽쉘 게스트하우스'를 베이스캠프로 선택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다음날 한라산에 오를 손님들을 위해서 겨울의 한라산 소개, 등산로, 차량 픽업 시간, 등반 시 유의 사항 등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대피소 매점 운영이 중단되어 라면을 맛볼 수 없다는 슬프지만 중요한 소식도 알려주었다. 



몽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나처럼 평소에 산과 친하지 않아 아무런 등산 장비가 없는 사람이라도, 일정 비용을 내고 등산화, 스틱, 아이젠, 보온병, 보온 도구 등을 대여할 수 있다. 나와 동생은 등산화, 스틱, 아이젠을 대여했다. 등산복이 없어서 바지만 트레이닝복으로 하고, 상의나 외투는 그냥 평소대로 입었다. 우리가 선택한 성판악 코스는 19.2km로 길어서 그렇지, 그렇게 험한 편은 아니라서 복장 때문에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한식으로 구성된 든든한 아침을 제공했다. 이른 아침이라 별로 입맛은 없었지만, 등산하려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니 어쨌든 배를 채웠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산에서 먹으라고 따뜻한 주먹밥도 챙겨주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7시쯤 출발했다. 성판악 입구까지는 약 13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부지런히 가야 했다. 등산/하산 제한시간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오른쪽 사진은 눈이 얼마나 두껍게 쌓여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찍었다. 사진에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눈이 거의 종아리~무릎까지 쌓여있기 때문에 사람이 디뎌서 단단해진 길로만 걷는 것이 안전하다. 괜히 추월한다고 옆길로 갔다가 갑자기 훅 빠져서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왼쪽의 사진처럼 한 줄로 갈 수밖에 없다. 눈 덮힌 아름다운 겨울 산행이 아니라,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행군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부지런히 걷다보니 머리가 점점 비워졌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많던 사람들도 어디로 갔는지 점점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두번의 휴식장소가 있다. 첫번째 휴식 장소까지는 출발한지 1시간 만에 도착했고, 진달래 대피소에는 10시 10분쯤 도착했다. 7.3km 구간을 파이팅 넘치게 걸었던 탓일까 굉장한 허기를 느꼈다. 식어버린 주먹밥을 먹으니 뜨끈한 국물이 그렇게 생각났다. 한라산에서 먹는 라면이 그렇게 맛있다더니만 왜 그런지 잘 알 것 같았다. 인생은 늘 선택의 문제인데, 보온병 대신 카메라를 챙겼던 건 실책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온병을 준비해와서 라면 먹는 사람들이 그 순간에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백록담까지는 2.3km로 길지는 않지만, 경사가 본격적으로 가파라진다. 아이젠의 진짜 묘미를 느낄 수 있을만큼 미끄럽고, 등산로 바로 옆의 새하얀 경사면은 아찔했다. 






11시 30분에 도착한 정상! 드디어 해냈다. 산을 올라갈 때는 9.6km를 4시간 동안 걸었고(2.4km/h), 하산할 때는 같은 경로인데 3시간 걸렸다(3.2km). 초짜의 겨울 산행 치고는 제법 잘 해낸 것 같고, 이제 다른 겨울산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어왔다. 남들에게는 시시해 보일지 모르는 도전이라도, 그 성취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면서 나 자신이 계속 발전해 나가는 느낌을 잃지 않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백록담에 오른 기념으로 한라산 등정 인증서도 1000원을 내고 발급받았다. 성판악 입구에 사무소가 있는데, 백록담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A4 사이즈의 멋진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인증서를 받으니 산행을 굉장히 잘 마무리한것 같아서 행복하고 뿌듯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뿌듯함은 느끼기 어려운데 오랫만에 만난 소중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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